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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심리학

상처 난 기억의 심리 살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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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난 기억의 심리 살피기

상처 난 기억의 심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영화에서 어린 시절의 주인공이 위험한 상황에 압도당한 때 정신을 잃고 쓰러진 뒤 그에 대한 기억을 못 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으로는 '해리 현상'이라고 합니다. 사실 해리는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0년대에 프랑스의 정신의학자인 Janet은 해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이것이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의 기억을 의식에 떠오르지 않게 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주로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 그 성폭행의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면서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마비 증상을 일으키고 이상한 회피 행동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녀는 이러한 현상이 트라우마의 기억과 연관된 압도적인 두려움과 공포• 불안의 감정을 피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심리기 전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나의 인격이 트라우마와 연관된 기억을 아예 떠올리지 않기 위해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격 구조와 반대로 트라우마의 기억을 자꾸 재경험하려는 인격 구조로 분리가 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죠. 후에 그녀는 트라우마로 인해 생긴 해리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트라우마의 기억과 그와 수반된 감정을 떠올리게 하면 그러한 증상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다른 정신의학자들이 이렇게 단순하게 트라우마 기억을 끄집어내고 감정을 발산한다고 해서 모두 다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아무튼 이미 140년 전에 해리 현상과 그에 대한 치료 지침을 발견한 그녀의 학문적 공로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해리 현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은 멀어져갔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트라우마 자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트라우마의 후유증인 해리 현상에 관해서도 관심이 줄 수밖에 없었죠. 때때로 영화에서처럼 아주 극적으로 인격의 전환과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인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에 대해 대중적인 관심이 쏠리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인격의 전환과 변화를 해리 현상으로 이해하는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약 20여 년 전부터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후유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해리 현상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해리 현상은 트라우마 경험에 대한 방어기전이면서 동시에 트라우마의 후유증을 계속 지속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아주 견디기 힘든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인격은 보통 두 개의 다른 인격으로 분리가 되는데, 하나는 필사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려는 인격 부분으로, 이를 '외관상 정상 인격 apparently normal personalty' 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외상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조그마한 자극에도 트라우마와 연관된 감정을 그대로 경험하게 되는 인격 부분으로, 이는 '정서적 인격 emotional personally' 이라고 합니다. 단 한 번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피해자의 경우, 트라우마로 인해 해리가 일어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외관상 정상 인격' 이 주로 작동하게 되면서 ' 정서적 인격'을 잘 억제합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든지, 혹은 원래의 트라우마와 유사한 자극을 받게 되면 늘려 있던 정서적 인격이 금방 활성화되어 외관상 정상 인격을 뒤흔들어놓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강간범에게 위협을 당하다가 목을 심하게 졸려 죽을 뻔한 사건을 겪은 여성은 자기 스스로 목걸이를 하는 아주 단순한 행동 혹은 애인의 팔베개를 하고 편안하게 눕는 행동 중에도 갑자기 겁에 질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여성은 그 뒤부터 그런 단순한 행동도 피하게 됩니다. 즉 그녀의 외관상 정상 인격은 트라우마의 공포를 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정서적 인격을 억압하고 피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외관상 정상 인격과 정서적 인격이 서로 통합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해리된 상태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정서적 인격은 언제든지 자극받아 쉽게 활성화되어 악몽 혹은 플래시백 행태로 나타나 외관상 정상 인격을 위협하는 현상이 지속됩니다. 이러한 인격의 해리는 트라우마를 여러 번 반복하여 경험할 때, 혹은 어려서 장기간 트라우마를 받았을 때 더욱더 복잡해집니다. 즉 정서적 인격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경험하는 정서적 인격, 분노를 느끼는 정서적 인격, 외로움을 느끼는 정서적 인격 등과 같이 정서적 인격이 여러 개 생겨나 외관상 정상 인격을 더 자주, 더 심하게 흔듭니다. 외관상 정상 인격의 파워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주로 정서적 인격들에 의해 삶이 지배당하게 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경계성 인격 장애 혹은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경우에 이러한 복잡한 해리가 나타납니다. 해리가 더 심하게 일어나게 되면 외관상 정상 인격도 두 개로 분리되는데, 이는 다중인격으로 알려진 '해리성 정체성 장애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해리가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그리고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트라우마의 기억은 봉합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후유증은 어쩌면 피해자의 삶을 통해 계속해서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트라우마로부터의 회복 과정을 통해 견딜 수 있는 힘을 기르면 우리 인간은 트라우마가 생기기 전보다 더 깊이 있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앞으로 더 나아갈 수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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