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읽는 심리 기술
상대를 읽는 심리 기술로는 우리는 평소에 성격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격이란 무엇일까? 성격의 일반적인 설명은 사고방식과 감정과 행동에 따라서 특징지을 수 있는, 그 사람 특유의 성질이다. 그러나 심리학에서는 좀 더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성격은 영어로는 퍼스낼리티 Personality라고 한다. 퍼스낼리티의 어원은 라틴어인 '페르소나 Persona'이다. 페르소나란 연극에서 사용하는 가면을 의미했다. 그러던 중 가면을 고 연기하는 배우를 가리키게 되고, 나아가 한 배우가 여러 역을 연기할 때 각각의 역에 따라 다른 특징을 페르소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배우는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고, 그 가면이 의미하는 역에 적합한 연기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일상적으로 배우와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다. 필자를 예를 들면 대학에 있을 때는 교수의 가면, 집에 가면 아버지의 가면을 쓴다. 물론 남편의 가면도 있다. 좋아하는 여성과 얘기할 때는 독신 남성이라는 가면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가면을 쓰느냐에 따라 가면과 적합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교수의 얼굴을 할 때는 교수답게, 아버지의 얼굴을 할 때는 아버지답게 행동한다. 어떤 가면, 혹은 가면에 부합하는 연기야말로 성격의 실체이며, 이것이 심리학에서 내리는 성격의 정의이다. 가면에 따른 연기를 심리학에서는 '역할 행동이라고 부른다. 그 자리에 적합한 역할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에 부조화가 일어난다. 예컨대 직장에서 썼던 가면을 그대로 쓰고 가정으로 돌아갔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부하 직원들에게 명령만 내리던 그 태도를 갖고 가정으로 돌아간다면 자식과 아내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이래서 자신의 자리에 따라 가면을 적절하게 바꿀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면 바꾸기가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니다. 한 가면에 너무 적응되어 무의식적으로 다른 장소에까지 쓰고 가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많은 경우가, 사회적인 가면이 너무 많은 강한 나머지 가정에서 아버지와 남편의 역활을 제대로 연기하지 못하는 예이다. 그런데 반대로 가정에서의 가면을 회사로 가져오는 예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휴일에 회사 동료들과 야유회를 갈 떄마저 평소의 출근 스타일에서 단지 넥타이만 푼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회사 인간의 가면이 너무 뼛속 깊이 배어 있어 철 가면처럼 얼에 붙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가면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교체하기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한 가지 직업에 종사하였다면, 그 가면에 맞는 행동과 분위기가 몸에 배어 버리는 것이다. 교사가 직업인 사람에게 주위에서 종종 이런 핀잔을 준다. "누가 교사 아니랄까 봐 가르치려 한다." 이런 경우처럼 오랜 시간 교직에 몸담아 온 사람은 놀러 가서도, 사적인 자리에서도 무의식적으로 교사처럼 행동하게 된다. 성격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측면과, '남들은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인식하는 측면이 있다. 후자를 '대인 인지'라고 한다. 대인 인지가 강할수록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를 많이 의식한다. 그리고 의식할수록 그 사람의 행동 연기는 커져 버린다. 예로 들면 교사가 선생님처럼 보인다고 의식할수록 교사답게 행동해야만 한다. 한 선생님이 술집에서 친구들과 모처럼 교사라는 가면을 벗어 놓고 즐기고 있다고 하자. 무신경한 동석자가 "어이, 선생!" 하며 그를 불렀고, 그 말을 들은 종업원이 "어머, 이분 선생님이세요?"라는 식으로 반응을 보인다. 순간 당사자가 교사처럼 경직된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은 대인 인지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격 ' 퍼스낼리티'라는 이론은 주로 미국 심리학계에서 발전한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는 그것과는 별도로 '성격 = 캐릭터 character'라는 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캐릭터란 원래 '새겨 넣는다, 조각해 넣는다'라는 의미의 그리스 어이다. '성격 = 캐릭터'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성격이란 원래의 유전적인 소질에 환경과 경험, 학습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각으로 비유하면 나무와 대리석 같은 소재들은 유전적인 소질에 해당하고, 그것을 어떻게 조각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과 경험, 학습이라는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해 성격의 근본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이고,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새겨도 '돌은 돌, 나무는 나무'라는 기본 소재의 성격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경험을 하든 타고난 성격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격 = 퍼스낼리티'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성격은 사회생활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실제로 바뀌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는 천부적으로 갖춰진 것이지만, 퍼스낼리티는 원래 존재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생성되는 것이다. 캐릭터는 타인의 유무 관계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 반해서, 퍼스낼리티는 타인의 눈이 있어야 하는 게 전제가 된다. 타인과 인간관계가 없으면 가면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 캐릭터는 있겠지만 퍼스낼리티는 없어도 좋다. 아무리 파렴치한 일을 하든, 그 어떤 모습을 하든 간에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가 그 방에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퍼스낼리티가 필요해진다. 그런데 '성격 = 퍼스낼리티'의 입장에서 보면, 성격이란 빨아먹으면 색이 변하는 알록달록한 사탕과 같은 것이다. 본질적인 맛은 변하지 않으면서 외부적으로 눈에 보이는 색은 변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은 가면을 어떻게 바꿔 쓰든 간에 저절로 배어 나온다. 학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도, 집에서 아버지와 남편으로 있을 때도 그 사람만의 느낌이 풍기게 마련이다. 어쩌면 퍼스낼리티의 핵심에 캐릭터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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