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부정하는 심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래
현실을 부정하는 심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진단명은 1980년에 처음으로 미국 정신과 학회에서 질병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는 전쟁, 대참사, 재난 같은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외상 사진을 경험한 후 그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상 사건의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 학자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심한 구타나 강간 같은 가정폭력, 학대, 성폭행 등은 여성이나 아동의 삶에서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선 것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외상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 당사자의 일반적인 적응 능력을 압도하는 특별한 사건으로 외상 사건을 정의하는 것이 더 옳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전쟁, 재난뿐만 아니라 자동차 사고, 강간, 성폭행, 중요한 사람의 죽음, 이별, 창피를 당한 경험, 심한 좌절의 경험, 심각한 질병이나 신체적 장애, 심한 불안의 경험, 고문, 유괴, 가족으로부터의 학대 등을 겪고 난 뒤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강렬한 두려움과 무력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외상 사건은 대개 신체적인 안녕이나 목숨을 위협하는 비인간적인 폭력성과 연관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한순간에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을 잃게 되는 상실이 트라우마와 연관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은 대개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크게 세 가지 주요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그 첫 번째는 과도한 각성 상태와 연관된 증상들입니다. 충격적인 사건 이후 언제 또 그런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위험에 대한 경계 상태가 지속됩니다.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예상하지 못한 자극에 대해 심하게 놀라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걱정이 많고 집중이 안 되며 죽음에 대한 공포도 매우 큽니다. 이러한 과도한 각성 상태는 수면을 방해하여 잠이 들기 어렵게 하고 작은 소리에도 깨어나게 합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대부분 교감신경계의 과도한 활성화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위험에 처했거나 놀랐거나 혹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외부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으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됩니다. 하지만 위험이 사라지거나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교감신경계가 다시 원래의 안정된 상태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몸과 마음이 너무 놀란 나머지 교감신경계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과도한 각성 상태를 유발하는 것이죠. 이런 상태가 계속 지속되다 보면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고 때로는 심한 분노를 폭발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도한 각성 상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이 가장 흔하게 호소하는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두 번째 증상은 바로 충격적인 외상 기억의 반복적인 재경험입니다. 외상 사건을 경험하고 한참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마치 현재에서도 그 외상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은 이 경험의 증상을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죠.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분들이 아직도 지하철을 편하게 타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경험의 증상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은 지하철역을 볼 때마다 그 당시의 지옥 같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에 그때 참사 사건 때 느껴야 했던 똑같은 강도의 두려움과 공포심에 휩싸이게 됩니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어떤 이미지나 잔상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플래시백의 형태로, 잠을 자는 동안에는 반복적인 악몽으로 계속돼 는 것입니다. 대개 이러한 경험은 원래의 외상 기억과 비슷한 자극을 받을 때마다 반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비 오는 날 폭행과 강간을 당한 피해자는 비 오는 소리만 들어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워하며 당시의 폭행 가해자와 비슷한 옷을 입은 남자만 보아도 공포에 질립니다. 외상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비슷한 곳에 가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오는 별것도 아닌 자극을 원래의 외상 사건 때 받은 위협적인 자극과 똑같이 받아들이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외상 기억의 재경험은 강렬한 정서적 고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생존자나 피해자는 계속해서 공포심, 무력감, 분노에 반복하여 시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러한 고통을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시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 보호의 시도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세 번째 증상인 회피와 둔 감화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압도적인 위협에 대해 완전히 무기력해지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면 우리는 실제 어떤 저항을 하기보다 차라리 의식의 상태를 변형시키는 방어를 하게 됩니다. 압도적인 위협 앞에서 완전히 얼어붙어 꿈을 꾸듯이 멍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현실감각이 둔해지거나 상실되고 시간 감각마저 변형됩니다. 그래서 현실이 아련한 꿈같이 느껴지고 트라우마도 남의 일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기 몸에서 의식이 분리되어 자기 몸을 관찰하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몸이 느끼는 아픔, 놀람, 두려움 등도 직접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분리된 의식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외상 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보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예 외상 사건 자체에 대한 기억을 못 하게 되기도 합니다. 기억의 둔감 화가 아니라 아예 기억 상실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러한 둔감한 증상은 '해리'라고 하는 현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해리와 같은 의식의 변형 상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두려움과 무력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의식을 잃거나 미쳐버리게 되기 직전에 자동으로 의식을 변형하여 주변 자극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적응적인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트라우마의 위협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이러한 의식의 변형이 오랫동안 지속될 때입니다. 트라우마 환자들은 주변의 자극에 대해 되도록 정서적 동요를 느끼지 않으려 하고 외상과 연관된 어떠한 기억도 하지 않기 위해 자기 삶의 대부분 영역에서 제한적이고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삶의 주도성, 적극성, 계획성, 의미 부여 같은 것들을 포기하고 그저 최소화된 삶을 영위하려 합니다.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려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옆에서 보면 마치 마음속 일부분이 죽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외상 사건을 경험한 이후 시간이 흐르면 이러한 회피 증상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특징은 위에서 말한 극단적인 흥분 상태의 증상들(과도 각성, 재경험)과 극단적인 마비 상태의 증상들(회피와 둔감한)이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서로 반대가 되는 극단적 상태로의 전환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도 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고 몇 년간 계속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조절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점점 더 삶을 지배하게 되면서 피해자들은 우울증,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폭식 등에 빠지기도 하고 심한 자살 사건을 벌이거나 사회생활을 단절하기도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들이 나타나는 시기는 각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외상 사건의 경험 이후 즉시 나타날 수도 있고 며칠, 몇 주, 몇 개월 또는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난 뒤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될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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