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연인형의 심리 보기
낭만적인 연인형의 심리 보기를 시작해 보자.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이상이 있다. 이상을 실현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상의 근원을 찾다 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말해 삶에서 놓쳤다고 생각했던 부분, 다른 사람이 채워주지 못했던 부분, 자신에게 해줄 수 없었던 부분이 이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안락함 속에 파묻혀 마음속으로는 늘 위험과 반란을 꿈꾼다. 만일 스스로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없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 그런 일을 대신 해주기를 바란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보다 더 창조적이고, 더 고상하고, 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상이란 이처럼 삶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을 가리킨다. 주변의 여건 때문에 이상을 향한 욕구를 마음껏 펼칠 수는 없다고 해도 그러한 욕구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여전히 존재한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거나 그것을 실현해줄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경우,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아이디얼 러버란 사람들이 삶에서 잃어버린 이상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것을 일깨워주는 존재를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의 이상을 반영해주는 존재이다. 우리는 아이디얼 러버에서 우리 자신의 욕망과 이상을 투사한다. 카사노바와 퐁파두르 부인은 대상을 단순히 관능적인 쾌락으로만 이끈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게 했다. 늘 한마디로 관찰하는 능력이 있어야 아이디얼 러버가 될 수 있다. 그들은 목표물로 삼은 상대방의 말이나 의도적인 행동을 무시하고 그들의 음성과 몸짓, 얼굴빛과 눈동자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통해 무심결에 자기 내면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이 상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루이 15세는 사냥을 좋아하고 젊은 여성을 탐닉했지만, 그런 행동은 자기 내면에 깃들어 있는 절망감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좀 더 고상하고 위대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친절과 선의를 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처럼 아이디얼 러버가 활동하기에 좋은 시대도 없다. 이제 누구도 힘 있는 자가 왕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매일 사람들과 힘을 겨루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고결함이나 자기 회생 같은 덕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디얼 러버는 우리를 뭔가 고결한 존재처럼 느끼게 해준다. 풀어 말하면 아이디얼 러버는 관능적이고 육체적인 것을 정신적이고 미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모든 유학자의 경우처럼 아이디얼 리버도 상대방을 지배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이상이라는 외피 뒤에 젖어 있기 때문에 그 본심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만큼 지속적인 유혹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상은 융이 말하는 원형과 비슷하다. 융의 원형이란 우리 문화의 면 과거에 뿌리를 둔.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이미지들이다. 중세 시대의 기사도도 그런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시대의 기사나 음유시인은 대개 한결같이 결혼한 유부녀를 유혹해 그녀를 군주처럼 받들어 모셨다. 그녀를 대신해 끔찍한 시련을 겪기도 했으며, 그녀의 명예를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처참한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손톱을 뽑고 귀를 절단하는 등 신체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일도 있었다. 아울러 그는 상대 여성을 위해 아름다운 시를 짓고 노래를 불렀다. 심미적이고 정신적인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상대 여성을 유혹할 수 없었고 유혹의 성공 여부는 절대적인 헌신에 달려 있었다. 전쟁, 출세, 돈과 같은 문제를 연애에 개입시키지 않는 남자만이 여성의 환심을 샀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익보다는 상대 여성을 먼저 생각해주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만 효과가 있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유혹하려면 먼저 그 사람이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곧 그의 마음을 장악할 수 있다. 아이디얼 러버는 사람들의 내면에 간직된 이상, 곧 어린 시절에 소망했던 꿈에 호소함으로써 상대방을 유혹하는 사람이다. 만일 정치가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면 국민으로부터 막강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존 F. 케네디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미국인에게 자신을 신비한 존재로 부상시켰다. 그는 잘생긴 얼굴과 젊음을 무기로 미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며, 위대해지고 싶은 미국인들의 욕망을 부추겼다. 1950년대 후반, 차츰 살기가 편해지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되자 미국인들은 프런티어 정신을 상실해버렸다. 케네디는 그런 미국인들에게 우주개발로 대표되는 뉴 프런티어라는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잃어버린 이상을 일깨웠다. 대부분이 상징적인 것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원하는 미국인의 본성이 케네디의 기치 아래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된 셈이었다. 이와 더불어 케네디는 위대한 국가라는 이상을 통해 미국인의 애국심을 고취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봉사를 강조했다. 평화봉사단 설립이 그 한 예이다. 이런 일련의 정치적 장치들을 통해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들해진 미국인의 모험정신과 이상을 다시금 일깨웠다. 그는 그 어떤 미국 대통령보다도 높은 인기를 누렸고, 미국인들은 말 그대로 케네디는 물론 그가 만들어낸 환상과 사랑에 빠졌다. 정치가는 국가의 과거를 파헤쳐 잃어버렸거나 억눌린 이상을 찾고 그것을 새롭게 제시할 때 대중을 유혹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러한 이 상이 현실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상징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면 그만이다.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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